일요일 저녁 6시, 집에서 가까운 파스타 가게로 향했다. 소개팅이 있는 날이었다. 걷는 내내 마음이 약간 들떠 있었지만, 동시에 긴장도 됐다. 이 가게는 조명이 은은하게 어두웠고, 벽에 비친 간접조명 덕분에 분위기는 조용하고 아늑했다. 중간중간 걸린 그림들은 산만하지 않으면서도 따뜻한 인상을 줬고, 덕분에 조금 들떴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창가 쪽은 4인석이라 앉을 수 없었고, 자연스럽게 2인석으로 자리를 잡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녀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지금 주차해놓고, 가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잠시 후, 등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XX님 맞으시죠?"
뒤돌아보니, 그녀가 서 있었다. 부드러워 보이는 화이트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짙고 단정한 검정 머리카락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세련되면서도 청순한 인상이었고, 그 조화가 어딘지 모르게 신선했다. 무엇보다도 눈에 띈 건 키가 정말 컸다는 것. 작은 얼굴과 대비되어 그 키는 더욱 돋보였고, 자신감 있어 보이는 분위기를 풍겼다. 그런데 그 이미지와는 다르게, 그녀의 목소리는 허스키하고 약간 낮았다. 묘하게 반전 매력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메뉴를 고르고 음식을 주문했다. 음식을 기다리며 대화를 시작했다. 나는 예전 소개팅 기억을 떠올리며 질문을 던졌고, 그녀의 말을 경청하려고 애썼다. 그녀는 가끔 나에게도 질문했지만, 말이 길어지는 법은 없었다. 자연스레 대화의 중심은 그녀가 되었고, 나는 편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저는 대화가 잘 통하고 같이 있을 때 편하고 재미있는 사람이 좋아요. XX님은요?" 그녀가 물었다.
나는 순간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했다.
"음... 저는 일단 긴 생머리의 청순한 사람을 좋아하구요, 또... 날씬한 사람?"
말하고 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지나치게 솔직했던 것 같아서였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아 그러시구나~ 저 잘 관리할 수 있어서 좋아요."
그녀의 말에 나도 웃었다. 분위기는 점점 부드러워졌다.
"저는 호감 있는 사람에게는 표현을 잘합니다. XX님은 어떤 스타일이세요?"
"저는 맞춰주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저도 표현 잘할 수 있어요. 상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녀가 말했다. 나는 살짝 덥게 느껴져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그녀가 또 물었다.
"음... 어떤 데이트 좋아하세요? 저는 집 데이트를 좋아해요."
솔직히 말하면, 소개팅 자리에서 집 데이트를 선호한다고 말하는 여성은 처음이었다. 당황도 살짝 됐지만, 장난스럽게 넘기기로 했다.
"아~ 집 데이트를 좋아하시는구나~ 그래도 초면인데 그렇게 말하시다니 놀랐어요!"
그녀는 잠깐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입을 삐죽 내민 그녀가 귀여웠다.
"아니, 뭐 그럴 수도 있죠~ 혼자 사세요?"
"저 고양이랑 살아요." 그녀가 대답했다.
"오, 집사님이셨군요. 그 고양이가 이 소개팅 반대하진 않았나요? 고양이 이름이 뭐에요?"
내가 장난스럽게 묻자,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리...치에요."
"오~ 리치라니 귀엽네요. 혹시 부자 되라는 의미인가요?"
그녀는 웃으며 스마트폰을 꺼내 리치의 사진을 보여줬다. 오드아이에, 털이 길고 희고, 정말 고운 고양이였다. 사진 속 그녀 역시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웃고 떠들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일요일이었고, 분위기도 좋았기에 더 길게 있지 않기로 했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가게를 나섰다. 내가 차가 없다는 걸 안 그녀는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고맙다고 인사하며 그녀의 차에 올랐는데, 운전은 다소 위태로워 보였다. 핸들을 잡은 손이 약간 떨리는 것 같기도 했고, 급정거하는 순간도 몇 번 있었다. 나도 모르게 긴장한 채로 근처에서 내리겠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끝까지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나는 차에서 내려 공동출입문 앞에서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했다. 그녀가 차를 돌리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집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옷을 벗고 샤워를 했다. 머리를 말리며 스마트폰을 확인했는데, 그녀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띄어쓰기 하나 없이 다닥다닥 붙은 문장이었지만, 먼저 연락을 해준 그녀의 마음이 고맙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짧은 만남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호감을 느꼈고, 그녀 역시 내게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2주 후 다시 만나기로 했다. 어떻게 보면 이 짧은 인연이, 앞으로 더 긴 이야기의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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